지적(地籍) 땅 지, 호적 적(혹은 문서 적)으로 구성되어서 그런지 지적을 흔히 〈땅의 호적〉이라고 한다. 그러나 호적은 순전히 행정이고 지적은 행정과 측량이라는 기술이 결합된 기초과학으로 위와 같은 비유는 합당치 않다. 더욱이 호적은 지적보다 약 500년 후에 탄생하였으니 지적은 〈땅의 문서〉, 호적은 〈사람의 지적〉이라고 하여야 맞다. 조선조 때는 경계(境界).양전(量田).양안(量案)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895년 내부 관제가 공포되었을 때 판적국에 〈지적에 관한사항〉을 관장하였다고 하였다. 이는 이노우에(井上 馨)의 내정개혁 건의로 된 것이고 〈지적〉도 일본에서 왔으나 언제어떤 연유로 생겼는지는 분명치 않다. 이 때를 근대 지적의 효시라고 본다면 지적은 100세를 넘었다.
측량(測量) 젤 측, 헤아릴 량, 측량은 측천양지(測天量地)의 준말이라고 한다. 측천은 수심과 하늘을, 양지는 땅을 잰다는 것이니 측량은 하늘, 땅을 총칭한다. 근대 서구식 측량은 1894년 농상아문과 공무아문에서 지형측량, 광무측량을 관장한다고 한 것이 최초지만 누가 무엇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. 1898년 양지아문에서 초빙한 그럼이 영어, 일어학교 학생 20명에게 교육을 하고 다음 해 4월 1일 한성부 숭례문에서 측량을 한 것이 근대측량(외업)의 효시다. 이때 새문안에서 추를 잃어 황성신문에 현상광고를 낸 일이 있다. 측량은 좁게는 지구 표면상의 위치 등을 넓게는 우주를 재는 기술이고 학문이다.